우리나라는 원래 결혼을 위해서 반지라는 예물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는 결혼 반지 대신에 가축이나 혼수품, 음식 등을 주고 받는 것이 통상적이 관례이다. 그럼 결혼 반지는 어떻게 해서 유래되었을까?
혼인(결혼)반지의 유래
오늘날 결혼식에 예물로서 반지를 교환하는 것은 보편적인 행위이다.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예물로 반지를 교환한다. 한국의 장신구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관습은 서양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도 가락지라는 반지가 존재했으나 어머니가 딸이나 며느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나 생각되며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것으로 정착된 것은 서양문화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양에서의 결혼과 관련지어 반지가 사용된 것은 문헌으로 알려진 바로는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로마문화가 그리스의 헬레니즘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이므로 어쩌면 헬레니즘의 풍습이 로마에 전해졌는지도 모른다.
로마시대에 반지는 약혼식에서 처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선물했는데 반지는 약혼의 정표로서 철로 만들어진 것이며 약혼 후에 신부는 이를 왼손에 착용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루치우스 안네우스 세네카(BC.90-AD.65년)나 플리니우스 체칠리우스 2세(AD.27-29년)의 기록에 의하면 약혼한 신부는 어떤 장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랑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서 반지를 끼었다고 한다.
히브리와 이집트 등의 셈족 문화권에서 반지는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고 특히 왕들에게는 인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로마에서도 물론 반지는 장식물로 사용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는 표지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노예들도 자신의 주인이 누구라는 고리를 차고 있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때 신랑이 일방적으로 신부에게 약혼의 의미로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어떤 예물의 의미보다는 약혼식을 통해서 신부가 신랑에게 귀속되었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았겠는가 추정된다.
아무튼 이러한 로마의 관습은 그대로 교회에 이어지게 되며 초대교부 떼르뚤리아노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 교회 혼인에 반지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이 교회 안에서 고착되었고 후에 반지를 축복하는 예절이 중세기에 스페인과 갈리아(오늘의 프랑스)지방에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떼르뚤리아노가 이야기했지만 교회에서의 반지는 참으로 두 사람이 교환하는 인격, 다시 말해서 사랑과 신의의 표지가 되는 것이다.
[원본출처]http://kdaq.empas.com/qna/view.html?n=8384045